독일은 예술가곡의 역사에서 권좌에 오른 나라입니다. '예술가곡(Kunstlied)'이라는 특별한 명칭도 사실 독일 가곡에서 비롯됩니다. '노래'라는 뜻의 독일어인 '리트(Lied)'는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포함한 독일어권에서 발달한 가곡으로, 독일 낭만주의 서정시의 발달과 함께 꽃을 피웠습니다. 특히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와 하이네(Heinrich Heine, 1797~1856)는 짧은 서정시를 통해 주관적인 표현양식을 개척한 탁월한 시인들로, 이들이 주로 쓴 주제는 사랑과 동경, 자연 예찬, 덧없는 인간의 행복 등이었습니다.
예로부터 작곡가들의 영감에 불을 지핀 시인들은 많았지만, 가곡의 발전을 논할 때 괴테의 이름을 뺄 수 없습니다. 성악음악에서 괴테는 당대의 작곡가에서부터 현대음악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독일 작곡가만이 아니라 이탈리아, 프랑스, 러시아 작곡가들도 앞다투어 그의 시를 음악으로 만들었습니다. 괴테의 작품에 붙인 음악은 셀 수 없이 많지만 가곡의 발전에 전기를 마련한 모차르트의 <제비꽃>은 리트 역사상 최초의 통절 가곡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리트의 역사는 '가곡의 왕' 슈베르트로부터 시작됩니다. 리트는 슈베르트에 의해 시와 음악, 성악과 피아노가 각자 자신의 목소리를 가지고 대화 하는 새로운 가곡 미학을 얻게 되고 예술가곡이 음악사에 독립된 장르로 정착되었던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음악에 조예가 깊었던 괴테는 59편이나 자신의 시에 곡을 붙인 음악 시인 슈베르트를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괴테를 열렬히 존경한 슈베르트는 <마왕>을 그에게 헌정하려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슈베르트 사후 몇 년 뒤에 <마왕>을 들은 괴테는 소박한 민요조의 노래라고 생각한 시를 슈베르트가 낭만적이고 극적인 비극으로 그려낸 데에 찬사를 보냈다고 합니다. <마왕>은 폭풍우 속에서 병든 자식을 품에 안고 달리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대화체의 시 형식에 담고 있습니다. 여기서 시의 극적인 분위기는 피아노가 맡고 있으며 셋잇단음표의 시종일관 반복되는 음형을 통해 말을 달리는 긴박한 상황을 그려냅니다. 전체는 통절형식으로 작곡되어 음악은 이야기의 전개에 따라 긴장을 고조시킵니다. 리스트의 표현에 의하면 슈베르트는 700여편의 가곡을 통해 가장 시인 같았던 음악가이며, 음악이라는 언어를 사용한 시인이었습니다. 슈베르트는 작품의 가장 큰 덩어리를 형성하고 있는 가곡은 교향곡과 실내악곡, 피아노곡과 종교음악에 이르기까지 그 특유의 서정성으로 스며들어 그의 기악 작품에서도 항상 노래 부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근원적으로는 가장 간결하고 소박한 가곡 형식을 가지고 그는 낭만주의 음악의 꽃을 피운 것입니다.
슈베르트의 뒤를 이어 낭만주의 독일 가곡의 절정을 이룬 작곡가는 슈만입니다. 그는 흔히 '노래의 해'로 불리는 1840년 한 해에만 무려 200여 편의 가곡을 작곡하였습니다. 문학적 소양이 뛰어났던 슈만은 그때까지는 기악작품과 피아노 작곡에 몰두하다가 클라라와 우여곡절 끝에 결혼한 이 해에 많은 가곡을 썼는데 <시인의 사랑>, <리더크라이스>, <미르테의 꽃>, <여인의 사랑과 생애>등의 연가곡들이 이때 탄생했습니다. 그는 가곡에서 '노래와 피아노를 위한 곡'이라는 개념을 발전시켰습니다. 즉 피아노의 인상적인 전주를 통해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암시하고 간주로 앞과 뒤의 시의 분위기를 연결하며 노래 선율을 중간에서 끝나게 하고 그 나머지를 피아노가 완성하게 하는, 즉 후주 부분을 두어 시의 여운을 지속시키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이 때문에 슈만의 가곡은 때로 피아노 소품처럼 들리기도 하며 노래가 피아노에 얹혀진 느낌을 주기도 하는 것입니다.
슈베르트와 슈만의 직계 후계자라고 할 수 있는 브람스는 200여 편의 가곡을 남겼습니다. 그가 즐겨 쓴 주제는 사랑, 자연, 그리고 죽음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브람스는 독일 민요와 어린이 노래들을 편곡하면서 가곡에도 이러한 요소를 사용하였는데, 그의 가곡은 민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단순한 유절형식이 많으며 대칭적이고 규칙적인 선율을 선호해서 소박한 느낌을 줍니다. 여기에 브람스 특유의 침울하고 어두운 주제가 어우러져 브람스만의 독특한 가곡세계를 펼쳤습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아름다운 마겔로네>, <네 개의 엄숙한 노래>, <5월의 밤> 등이 있습니다.
말러는 피아노와 성악의 결합인 독일 리트를 관현악 반주에 의한 예술가곡으로 탈바꿈시킨 인물입니다. 19세기 말 교향곡의 대가였던 그는 민요와 낭만주의적인 시에서 영감의 원천을 끌어내고 자신의 자전적인 체험을 관현악과 목소리의 결합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대표작으로 <뤼케르트 가곡집>, <방랑하는 젊은이의 노래>,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 등이 있습니다. 말러의 관현악 반주 붙은 가곡을 계기로 작곡가의 개성적인 양식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전개되는 독일 가곡의 전통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에서 막을 내린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가곡은 비록 가수들에게는 어려운 기교를 요구하고는 있지만 청순한 서정이 강조되며 연주시간도 2분에서 5분을 넘지 않는 간결한 작품들이 대부분입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이후 독일 가곡의 전통은 제 2빈악파의 쇤베르크와 베베른, 베르크의 가곡들로 계승되는데 여기서는 보다 개인적이고 확대된 표현들이 두드러집니다. 또한 말인지 노래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새로운 성악기법들과 무조음악으로 작곡된 진보적인 작품들은 이미 새로운 음향 창조의 영역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확대되었음을 보여줍니다.
'클래식 음악' 카테고리의 다른 글
클래식 음악 -예술가곡- 3) 프랑스,이탈리아,기타 여러 나라의 가곡 (0) | 2023.05.13 |
---|---|
클래식 음악 -예술가곡- 1) 예술가곡의 정의 (0) | 2023.05.09 |
클래식 음악 -실내악- 4) 20세기의 실내악 (0) | 2023.05.08 |
클래식 음악 -실내악- 3) 낭만주의 실내악 (0) | 2023.05.08 |
클래식 음악 -실내악- 2) 고전주의 실내악 (0) | 2023.05.0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