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 공연의 프로그램을 보면 대부분 발레 제목 바로 아래 작곡가가 소개됩니다. 연출가나 안무가보다도 작곡가가 먼저 소개되는 것은 발레 음악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발레 공연에 음악이 빠진 것이 얼마나 맥 빠진 것인가를 영화 <아마데우스> 중 <피가로의 결혼> 리허설 장면에서 볼 수 있습니다. 황제가 발레를 금지하였으므로 극장장은 모차르트에게 음악을 뺄 것을 주문하고 음악 없이 춤만 공허하게 진행되는 이 장면은 춤과 분리될 수 없는 음악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어떤 음악가들은 발레 음악이 엄연히 무대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연주만으로는 적당하지 않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드라마틱한 구성과 아름답고 화려한 선율로 인해 음악만으로도 충분히 환상적이고 낭만적인 발레의 매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백조의 호수>나 <호두까기 인형>의 선율들은 어디에서나 친숙하게 접할 수 있으며 게임 음악이나 광고 음악에도 사용될 만큼 대중적인 선율이 되었습니다.
러시아 발레
19세기 중반에 들어서면서 발레의 중심지는 러시아로 옮겨지기 시작했습니다. 프랑스에서 이주해 온 훌륭한 발레 교사와 이탈리아에서 초빙한 무용수들을 통해 새로운 지도법이 만들어졌고, 당대의 유명한 작곡가들이 발레 음악 만들기에 참여하면서 러시아 발레는 발레의 전형적인 틀을 다지는 새로운 중심지가 됩니다.
발레는 크게 고전 발레와 근대 발레(창작 발레)로 나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발레는 대부분 고전 발레에 속하는데, 이는 작품이 지니고 있는 기본적인 골격을 유지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즉 주로 신화나 동화 속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이야기의 전개에 따라 장면을 나누거나 풍성한 볼거리를 위해 디베르티스망(divertisment)을 삽입하는 것을 말하며, 토슈즈를 착용하는 것 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특히 여기서 디베르티스망은 17, 18세기 프랑스 오페라의 발레와 같이 줄거리와는 관계없이 화려하고 기교적으로 다양한 춤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무용수들에게는 최고의 기량을 선보이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음악적으로도 가장 다채롭고 이국적인 음색이 펼쳐지는 기악 부분을 말합니다. 이러한 디베르티스망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차이코프스키의 <호두까기 인형> 제2막에 나오는 음악들로, 중국의 춤, 아라비아의 춤, 스페인의 춤, 트레팍(러시아의 춤) 등은 춤과 음악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전 발레는 주인공의 춤과 솔리스트들의 춤, 그리고 군무로 구성됩니다. 음악적으로 가장 탁월한 부분은 대개 남녀 주인공이 추는 2인무인 파드되(pas de deux)로서 처음에 느리게 시작되어 각각의 독무(바리아시옹)와 코다로 이어집니다. 음악적으로 유명한 파드되는 <백조의 호수>의 '그랑 파드되'와 프로코피에프의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발코니 장면으로 이 장면의 음악들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춤의 성격에 따라 다양한 표정을 담아냅니다. 또한 솔리스트들의 춤인 파 쇨(독무), 파드트루아(3인무), 파드카르트(4인무) 역시 음악적인 완성도가 뛰어나며 군무(코르드발레) 음악 역시 차이코프스키의 '꽃의 왈츠'나 '정경' 등 빼어난 음악을 배경으로 무대를 아름답게 수 놓습니다.
오페라에 교향악적인 수법을 도입하여 악극의 새로운 장을 개척한 작곡가가 바그너라면, 차이코프스키는 발레 음악에 교향악적 수법을 도입하여 무용음악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올려놓았다는 접에서 높이 평가받습니다. 실제로 발레 음악 자체만으로 명성을 얻은 것은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이 최초일 것입니다. 그의 왈츠와 파드되 선율들은 누구나 노래할 수 있을 정도로 친숙하며 관현악은 유연하고 풍부한 화성들로 채워집니다. 그의 3대 발레 걸작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 속의 미녀>, <호두까기 인형>은 발레 음악을 한 층 높은 예술적 경지에 올려놓은 걸작들입니다.
차이코프스키를 필두로 러시아 발레는 더욱 우위를 점하게 되는데, 여기에는 탁월한 흥행사 디아길레프(Sergei Diagilev, 1872~1929)가 있었습니다. 그는 1909년부터 약 20년간 파리를 중심으로 러시아 발레단(발레 뤼스, Ballet Russe)을 이끌면서 발레와 작곡가를 긴밀히 연결한 인물입니다. 디아길레프는 당대의 뛰어난 음악가와 미술가들을 총동원하여 종합예술로서의 발레의 위상을 확립했으며 에릭 사티, 라벨, 드뷔시, 스트라빈스키, 미요, 파야 등 많은 작곡가의 작품은 그와 함께 작업함으로써 근대 발레 음악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이 중 단연 돋보이는 인물은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로서 그는 디아길레프와 발레 뤼스를 위해 <불새>(Firebird)와 <페트루슈카>(Petruska), <봄의 제전>(Le Sacre du printemps)을 썼습니다. 스트라빈스키는 이 외에도 <병사의 이야기>, <풀치넬라>, <뮤즈를 거느리는 아폴론> 등의 작품을 통해 발레 음악 작곡가로서 명성을 날렸습니다.
스트라빈스키 다음으로 러시아 발레 음악의 맥은 프로코피에프(Sergei Prokofiev, 1891~1953)으로 이어집니다. 그의 대표작 <로미오와 줄리엣>은 두 가문 간의 적대적인 싸움을 음악적으로 부각한 작품으로 긴장감과 서정성이 극적으로 대비됩니다.
20세기 발레 음악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발레 음악은 모던 발레의 발전과 함께 혁신적인 음악어법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이나 라벨의 <볼레로>와 <다프니스와 클로에>, 파야의 <삼각모자>와 <사랑은 마술사>, 바르토크의 <중국의 이상한 관리>, 코플랜드의 <로데오>와 <애팔래치아 산맥의 봄> 같은 작품들은 고전적인 틀을 벗어나 독특한 민족적 정취와 새롭고 혁신적인 춤을 빛내주는 발레 음악의 걸작들입니다.
오늘날 세계 여러 나라에서 자주 공연되는 명작 발레는 20편 정도를 꼽을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작품들 외에도 <돈 키호테>, <라 바야데르>, <파키타>, <빌리 더 키드>, <레이몬다> 등을 포함할 수 있습니다.
발레 공연을 관람하는 사람들이 발레에서 음미하는 것은 무용수들이 빚어내는 춤의 미학이지만 동시에 주인공들의 심리 변화에 따른 표정과 음악이 어떻게 일치하는가를 읽어내는 것도 큰 즐거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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