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 -춤음악- 1) 모음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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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악

클래식 음악 -춤음악- 1) 모음곡

by auftakt 2023.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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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는 춤의 시대라고 할 만큼 최근 예술 활동에 있어 춤의 비중은 날로 높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대중음악에 있어 춤의 역할은 음악 중요성을 능가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음악과 춤의 만남이 21세기의 새로운 현상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춤과 음악은 태고 때부터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예술 활동으로서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발전해 왔기 때문입니다.
음악이 없는 춤을 상상할 수 없듯이, 춤이 없는 음악도 상상할 수 없습니다. 모든 음악 속에는 춤의 요소들이 녹아있다는 뜻입니다.
왈츠, 미뉴에트, 볼레로같이 구체적인 춤 리듬을 사용한 춤곡뿐만 아니라, 모든 음악 형식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인 2마디, 4마디 구조는 춤을 위한 왼발, 오른발로 이어지는 짝수 리듬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또한 성악곡만이 음악으로 인정받던 중세 이후부터 16세기 이전까지도 춤곡은 유일하게 악기만으로 연주되는 것이 허용된 음악이었으며, 16세기 말 춤곡은 본격적인 기악음악의 발달에 지대한 역할을 하였고, 바로크 시대에는 가장 발달했던 기악 음악 양식이었습니다.

프랑스와 미뉴에트

16세기 유럽은 춤을 이교도적이고 음란한 것으로 치부했던 중세의 전통에서 벗어나 이른바 춤의 시대를 맞게 됩니다. 이 시대의 춤은 귀족들의 여흥을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이었기 때문에 유럽의 전제 군주를 중심으로 한 화려한 춤 문화가 형성되었습니다. 특히 '태양 왕'이라고 불리는 프랑스의 절대 군주 루이 14세는 춤의 보급과 춤음악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고, 당시 가장 크고 화려했던 베르사유 궁정은 명실상부한 춤의 메카가 되었습니다.

 

루이 14세는 연일 벌어지는 화려한 연회를 위해 여러 나라 다양한 지역의 춤을 받아들여 자신의 취향에 맞게 안무하고 또 음악을 작곡하게 하였습니다. 17세기 가장 대표적인 프랑스의 춤이라고 할 수 있는 미뉴에트는 원래 프랑스 농민들의 춤이었지만, 루이 14세가 륄리(Jean-Baptiste Lully, 1632~1687)를 시켜 이 춤에 대한 음악을 작곡하게 하고 자신의 무용 교사였던 보샹(Charles Louis Beauchamp)에게 안무를 맡겨 우아한 궁중의 춤으로 만든 것입니다. 루이 14세는 세련되게 변신한 미뉴에트에 맞춰 직접 베르사유 궁정의 공식 무도회에서 최초로 춤을 추었다고 전해집니다. 이렇게 그의 춤과 춤음악을 향한 열정 덕분에 프랑스 궁정은 물론 민중들 속으로 파반느, 갈리야르, 쿠랑트, 알르망드, 브랑르, 파사메조, 사라방드와 같은 춤이 널리 보급되기 시작하였으며, 이를 위한 춤음악도 급속도로 발전하였습니다.

바로크의 춤곡

17세기 중반 바로크 시대를 지나면서 춤음악은 두 가지 중요한 변화를 맞게 됩니다. 첫째는 원래 춤을 추기 위한 반주음악이었던 춤곡이 점차 감상을 위한 음악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며, 둘째는 모음곡(suite)이라 하여 몇몇 나라들의 특징적인 춤을 모아서 한꺼번에 연주하는 관습이 생겨난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가 갑작스럽게 일어난 것은 아닙니다. 이미 르네상스 후기부터 느린 2박자 춤곡과 빠른 3박자 춤곡이 쌍을 이루어 연주되는 전통이 있었는데, 이는 남녀가 만나 손을 잡고 춤을 추려면 어디까지나 교양인으로서의 예의를 갖추어야 할 것이므로 처음부터 정신없이 빠른 리듬으로 춤을 출 수는 없었을 것이며 그 결과 파반느-갈리야르, 파사메조-살타렐로, 알르망드-쿠랑트 같은 대조적인 빠르기의 춤곡 전통이 생겨났습니다. 두 개의 춤이 쌍을 이루어 연주되는 경우 흔히 두 번째 춤곡은 첫 번째 춤곡의 리듬을 변화시킨 리듬 변주곡의 형태를 갖추었습니다. 이렇게 속도를 달리하는 춤 모음곡의 관례는 처음에는 춤을 추는 순서대로 배열한 것이었지만 나중에는 각 악장 간의 빠르기와 정서를 달리하는 소나타를 비롯한 기악음악 형식의 근간이 됩니다.

모음곡 형식

모음곡이 탄생하기 전부터 프랑스에서는 브자르(Jean-Baptiste Besard), 샹보니에르(Jacques Champion Chambonnieres), 쿠프랭(Louis Couperin), 당글베르(Jean-Henri D'Anglebert) 등과 같은 작곡가들에 의해 여러 개의 춤곡을 모아서 연주하는 관습이 이미 도입되어 있었습니다. 독일 작곡가들은 이러한 프랑스 모음곡의 전통을 계승 발전시켜 악장 간의 통일성을 살려 좀 더 정형화시킨 모음곡(suite) 형식을 탄생시켰습니다. 프로베르거(J.Froberger)는 최초로 바로크 시대 모음곡의 틀을 확립시킨 독일인 작곡가입니다. 그의 모음곡들은 기본적으로 알르망드, 쿠랑트, 사라방드, 지그로 구성되지만, 사라방드의 앞과 뒤에 미뉴에트, 부레, 가보트, 파스피에, 폴로네즈, 리고동, 앙글레즈, 루르, 에르 등의 다양한 춤곡이 삽입되었습니다.

 

대부분의 프랑스 작곡가들은 동시대 독일 작곡가들이 완성한 이 모음곡의 모델을 따르지 않고 자신들의 전통을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특히 프랑수와 쿠프랭(Francois Couperin)은 질서라는 뜻의 '오르드르(ordre)'라는 말을 붙여 프랑스식 모음곡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모두 27개의 오르드를 작곡하였는데, 그의 오르드르에 포함된 곡들은 춤곡의 요소들이 여전히 남아있기는 하지만 회화적 또는 문학적 제목이 있는 표제음악의 특징을 가진 곡들이 많습니다. 화려한 꾸밈음과 명쾌하면서도 섬세한 선율, 반음계적 화성, 개성 있는 리듬의 사용이 돋보이는 걸작으로 꼽힙니다.

 

이렇게 바로크 시대에 프랑스에서는 프랑스식 모음곡을 개발하였지만, 프랑스를 제외한 전 유럽에서는 모음곡(suite)이 가장 중요한 기악 양식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바로크 모음곡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바로 국제적이라는 데 있습니다. 즉 여러 나라의 다양한 춤곡들이 모여서 하나의 형식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파스피에, 가보트, 부레, 미뉴에트 등 프랑스 춤곡이 대체로 많지만, 바로크 모음곡은 독일의 알르망드(장중한 보통 빠르기의 4/4박자), 프랑스의 쿠랑트(알르망드보다 약간 빠른 3/4박자), 스페인의 사라방드(느리고 장중하며 두 번째 박자의 길이가 길어 악센트가 가해지는 3/4박자), 아일랜드의 지그(빠른 6/8박자)등 다양한 속도와 리듬을 지닌 춤곡들이 하나의 조성으로 묶이게 됩니다.

 

이렇듯 춤이 유럽 연합(EU)이라고 할 수 있는 바로크 모음곡은 유럽 각 지역의 민속 선율과 고유한 리듬으로 작곡되어 각기 다른 정서를 반영하면서 자연스럽게 다악장 형식에서의 악장 개념으로 진화해갔습니다. 특히 모음곡의 사라방드와 지그 사이에 삽입되었던 미뉴에트는 훗날 춤곡의 느낌은 유지하되 감상용 연주음악으로서 교향곡과 현악 4중주 등 고전주의 시대의 소나타 악곡의 3악장으로 정착되었습니다.

바로크 관현악 모음곡

바로크 모음곡은 프로베르거 이후 베크만(Weckmann), 파헬벨(Pachelbel), 북스테후데(Buxtehude)등에 의해 꾸준히 작곡되었지만 바흐에 의해 그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바흐는 건반악기를 위한 각 여섯 곡의 영국 모음곡과 프랑스 모음곡, 그리고 파르티타를 작곡하였습니다. 바흐는 그의 각 모음곡 앞에 전주곡을 넣거나 토카타, 카프리치오와 같은 좀 더 자유롭고 고도의 기교를 필요로하는 춤곡을 넣는 등 다양한 시도를 통해 모음곡의 예술적 수준을 크게 향상시켰으며 독주 건반악기를 위한 모음곡 이외에도 실내악과 관현악을 위한 모음곡들을 많이 작곡하였습니다. 4개의 관현악 모음곡과 바이올린을 위한 파르티타가 그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바흐의 작품 중에서는 가장 대중적이라고 할 수 있는 'G선상의 아리아'는 원래 관현악 모음곡 제3번의 두 번째 곡입니다. 관현악 모음곡 제3번에는 서곡과 함께 가보트와 부레, 지그 외에 2악장 '에르(air)'등 다섯 곡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바흐는 다른 악장과는 달리 2악장에는 특별한 춤 리듬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노래라는 뜻의 '에르(air)'라고 명명하였습니다. 그러나 후대에 와서 실수 인지 의도적이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에르라는 이 곡의 제목이 오페라의 독창 노래를 의미하는 아리아(Aria)로 제목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또한 악마적인 기교로 유명한 파가니니가 격렬한 연주고 세 줄이 모두 끊어지고 G선만 남은 바이올린으로 이 곡을 훌륭하게 연주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 때문에 이 곡은 <관현악 모음곡 제3번 2악장 에르>라는 바흐의 원제보다는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G선상의 아리아'라는 제목으로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바로크 시대 관현악 모음곡에 있어 바흐와 견줄 만한 작곡가는 헨델입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수상음악>과 <왕궁의 불꽃놀이>를 들 수 있는데, 이 곡들은 선명한 선율과 화려한 음향이 가져다주는 음악적 효과뿐만 아니라 작곡 과정에 얽힌 전설적인 에피소드 때문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헨델이 배신했던 옛 고용주가 영국 왕위를 계승하여 자신이 속한 영국 왕실로 오게 되자 입장이 난처해진 헨델이 새 국왕의 마음을 돌리고 환심을 사기 위해 왕의 뱃놀이를 위한 음악을 작곡하여 선상에서 연주했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합니다. 또한 <왕궁의 불꽃놀이>에 관해서도 1749년 이 곡이 영국과 프랑스의 종전을 축하하는 불꽃놀이 행사를 위해 작곡되었지만 행사 당일 곡의 초연을 앞두고 천막에 불이 붙어 그 화려했던 행사장이 아수라장으로 변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헨델은 관현악을 위한 모음곡 외에도 하프시코드를 위한 모음곡을 20여 개나 작곡하였습니다. 이들 작품 중에는 기본 악장 구조를 따르는 것도 있지만 푸가, 변주곡, 아리아, 미뉴에트 등의 새로운 형식이 기존 춤곡들을 대체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헨델의 가장 대표적인 하프시코드를 위한 모음곡은 그의 모음곡 제1집 <대장장이의 노래>에 수록된 제5번 모음곡 D단조이며 이 중 3악장 '사라방드'는 장중하고 애절한 선율로 유명해져서 따로 '헨델의 사라방드'로 즐겨 연주됩니다.

 

바로크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기악음악의 모든 장르에 걸쳐 널리 사용되던 모음곡 형식이 차츰 위축되어 고전주의 시대에 와서는 다양한 춤곡을 엮은 모음곡 형식은 거의 사라지고 디베르티멘토나 고전주의 소나타의 미뉴에트 악장 등만이 옛날 바로크 모음곡의 흔적을 전하게 됩니다. 유럽 각국의 춤곡을 한 세트로 감상하도록 설계된 바로크 모음곡은 시대를 지날수록 고도로 양식화된 기악 장르들에 자연스럽게 흡수되어 그 리듬적인 역할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이후 낭만주의 시대로 진행할수록 각 지역의 민속 춤곡들은 과거의 궁중무용처럼 사교용이 아니라 전문 무용가들이 감당할 수 있는 표현을 위한 춤곡과 발레 음악의 형태로 나타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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